- 제2회 젊은작가 무료전시 최은화
<작가의 작업노트> - 바람난 고양이
인간은 태어난다. 그리고 만들어 간다. 다시 그리고 만들어 가면서 인간은 비로소 자아를 찾게 된다. 그것은 도덕책에서처럼 어느 시기에 확립되는 자아가 아니다. 나는 그랬다. 수동적으로 태어나 가족이라는, 생각하기만 해도 흐뭇한 담 속에서 별다른 일 없이 잘 보냈다. 가난이라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돈과 경제적 논리에 전혀 감각을 가지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나는 한 남자의 아내와 엄마가 되는 것에도 전혀 두려움을 가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산후 우울증을 앓는다고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를 낳기 전부터 나는 깊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공평치 않은 현실에서 지금보다 더 구속 받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내가 나를 모르면서 경험한 그때의 당혹감은 나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나는 늘 등 뒤의 눈동자들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싶어했다. 내 등 뒤의 눈동자들은 내가 무엇을 먹는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행동하는지조차 그리워하는 것이었다. 나는 매일 수술대 위에 놓여 해부 당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괴로웠다. 그리고 생활이 나를 옥죄어 오면 올수록 나는 튕겨나가고 싶어했고 그럴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자유를 꿈꾸고,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현실에 분노했다.
오늘날 사회의 최대 이슈는 성이다. 사회 전체가 이 문제에 빠져 있으며 영상 미디어는 물론 문화 전반에 걸쳐 다루고 있다. 내가 작업에서 다룬 주제도 성에 관한 것이다. 우리의 인류가 형성되어서 지금까지 발전해오면서 성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선천적 성(sexualorigination)과 후천적 성(gender)적 차별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심적 부담은 날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선천적 성은 (남자), (여자)라는 생물학적 성을 의미한다. 남자는 사회구조 속에서 남자로 태어나 성적 억압의 주체가 된다. 피주체가 되는 여자는 종속물로서 마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마네킹”처럼 지배와 복종의 대상이 되어 끊임없이 가부장적 사회구조 안에서 최소한의 권리와 자유를 얻기 위해 타협과 양보를, 그리고 간접적인 분노를 표출한다.
그러나 늘 제자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그로 인해 여자는 자신의 주체(자아)를 상실한 채 소외된 성이 아닌 구속 당한 성에 지쳐 그냥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여자들은 한번쯤 사회적 편견을 무시하고 벗어나 “바람난 고양이”를 상상하고 꿈꾼다. 미묘한 내면의 감정들을 가슴에 품고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도발적으로 표현한다.
하루에도 서너번씩 조각난 거울에 자신을 비추며, 붉게 타오르는 가스렌지 위에 먹을 거리를 요리하며, 텅 비어 버린 세탁기를 돌리며, 잘 정돈된 냉장고를 다시 정리하며 “바람난 고양이”가 되어간다. 그리고 홀로 벽을 향해 뒤돌아서서 창 너머 세상을 궁금해하지 않으려 애쓰던 여아가 어느날 여성이 되면서 부터 시작된 기능, 그 기능에 분노만을 가지지 않는다. 비록 수동적으로 태어났지만 수동적인 종말을 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또 한가지 지나칠 수 없는 사실은, 이번 행사는 이 행사의 계기를 만들고 후원한 3사의 도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막대한 경제적 희생을 무릅쓰고 후원한 세 회사의 뜻이 엄격하게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뜻이 조금도 훼손되거나 소홀하게 대접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사는 객관적인 공정성을 기한다는 의미에서 사진계의 인맥이 가장 적거나 공정할 것으로 믿어지는 분들이 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다. 이것은 심사하는 분이 공정하지 못한 심사를 하기 때문이라는 뜻이 아니라, 공정한 심사를 해도 인맥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잡음이 있을 수 있으므로 해서, 후원사를 비롯한 주관사 또는 선정된 사진가의 품위가 손상되거나 뜻이 훼손될 수 있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용기있게 결정한 일이다.
이와같은 근본취지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심사기준을 마련하였다.
<심사소감>
이번에 응모한 작품들을 보면서 놀라고 만 사실은, 그 동안 너무나도 훌쩍 커버린 우리 사진계의 수준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국력이 그만큼 성장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폭이 넓어지고 깊어진 우리 사진 교육의 공로가 아닐까 생각된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정말 그 말이 실감나는 현상이었다. 작품의 질적인 수준이나, 포트폴리오의 완벽한 제시, 사진 작품에 최고의 긍지를 갖고 있는 젊은 사진가들의 패기와 확고한 신념을 보는 것 같아 정말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이것은 역사적인 현장이라고까지 느껴졌다.
그 동안 아마추어 사진 위주의 콘테스트에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자식을 낳아 놓고 키울 줄 모르는 어미의 비좁고 매정함에 가슴을 앓고 방황하며 목말라했던, 그러면서도 자신의 작품세계에 몰두하는 젊은 사진가들의 절규가 깊이 느껴지기도 하는 현장에 우리는 그 엄중한 책임감과 경건한 사명감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자리가 더 확산되고 풍요로워져, 어느 곳엔가 외톨박이로 숨어서 고독하게 자신의 작품세계에 열중하는 젊은 주변부 사진가들을 계속 발굴하여 이 땅의 사진계가 활기차고 기름지게 해야 한다는 소망이 절실했다. 이 행사의 계기가 된 ‘못과 망치’, 그리고 어려운 중에도 선뜻 자리를 마련해 준 ‘인데코 화랑’,‘우리 얼 밝히는 사람들’, 그리고 이러한 잔치를 마련하기 위해 애쓰신 ‘사진예술’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울러, 창간 10주년을 맞이한 “사진예술”은, 이러한 사유로 인해 정말 더욱 발전해야 하고, 꼭 있어야 하는 잡지임을,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합심하여 ‘사진예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원래 이 행사의 취지로, 작년의 소감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사진가로서의 역량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경제적인 능력이나 여건이 여의치 않아 전시회를 하지 못한, 장래성 있는 어려운 젊은 사진가를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작년과 금년에 심사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어떻게 판별하고, 그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었다. 더우기 우수한 작품과 경제적인 여건이란 두 함수를 어떻게 조화시키는가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염두에 두면서 심사를 했다. 경제적 여건을 어차피 판별하기 어렵다면, 우수한 신인을 우선으로 하되, 이미 발표한 작품이거나 개인전을 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제외한다. 그리하여 응모한 24작품을 우선 심사하여 7작품(이수왕, 이영균, 허재성, 정석헌, 구성연, 방병상, 최은화)을 선별하고, 다시 그 중에서 심사숙고를 한 결과 최은화, 정석현, 구성연의 세 작품을 놓고 최종 결심을 했다. 모두 우열을 가린다는 게 어폐가 있을 작품들이었지만, 좀더 확실한 개념을 형상화 했다는 점에서 최은화를 최종 결정하는데 합의했다. 그렇게 결정하긴 했지만, 24작품 중 몇 점을 제외하고는 수준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장단점을 고루 갖추고 있는 작품들이어서, 그 중 몇몇 작품은 언제고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미련을 버릴 수 없을 만큼 좋은 작품들이었다. 결코 탈락한 작품이 작품성의 우열에서 뒤진 것은 아니란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번에 심사를 하면서 느낀 점은, 앞으로 ‘어려운 사진가’라고 전제를 부각하지 않고 ‘촉망되는 신인’쪽에 비중을 두며, 심사도 더욱 강화해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응모하신 모든 분께 그 노고를 감사의 말씀으로 치하한다.
● 글·전규완
최은화
· 1970년 출생
· 1991년 서울예술전문대학 사진과 졸업
· 1999년 6월 상명대학교 사진학과 졸업
[단체전]
· 1998년 ‘색동저고리’ (여성사진작가전)
· 현재 파스텔 스튜디오 소속 사진가